일단 ‘하지 마세요’
라고 할거다. 사다리 걷어차기가 아니라 지금까지 쌓아온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따져보았을 때 저 대답이 통계적으로 옳은 대답에 가깝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잘 안되었을 때 괜히 욕 얻어먹기 싫기도 하다 :)
에잉 대답이 그게 뭐야 진짜 제대로 알려줘
라는 대답이 돌아온다면 다시 한번 자세를 고쳐 앉아 대답을 할 의향이 생긴다. 그리곤 다시 ‘하지 말라니까’ 라고 대답할 것이다. 여전히 괜히 겁줘서 개발자 못하게 만드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요즘은 2020 - 2022 처럼 그냥 개발자 되고 싶다고 되는 쓱싹 되는 세상이 아니다. 단순하게는 당신의 주식계좌와 함께 취업 시장이 함께 얼어붙었다고 생각해도 좋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ko40F5yBdKg)
분명 내가 취준을 하던 2020년 초 쯤엔 부트캠프 수료 전에, 부트캠프 수료 후 3개월 내로 거의 대부분의 신입 개발자들이 어딘가에 취업을 하던 시절이 있기는 했다. 본인이 학습이라는 행위에 대단히 소질이 없지 않고 어느 정도의 의지만 있다면 낙오자도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그때는 그 모든 지표들이 다 우리가 잘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큰 착각이었다. 내가 부트캠프 강사를 그만두던 시기인 2022년 1월 쯤엔 평균 6개월까지 슬금슬금 기간이 늘어나더니 지금은 1년까지도 보는 것 같다. 부트캠프는 보통 3-6개월 정도의 교육 기간을 가지고 있으니 역산하면 취업문을 넘기 위해 부트캠프 수료 이후에도 평균 6-9개월의 별도의 학습 기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부트캠프에서 공부할 동안은 빡빡한 일정과 비교심리에 스트레스는 받을지언정 강제로 팀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얼렁뚱땅 뭔가를 배우고 대부분 결과적으로 그 속에서 성취감을 얻어가는 편이다. 하지만 모든 과정이 끝나고 다시 짐싸서 집으로 나오는 순간 내게 정말 1) 개발이 좋아서 N개월을 고생한게 맞는가 2) 혼자 공부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진게 맞는가 에 대한 자문을 시작하며 자존감 하락과 외로움을 겪는다. 1의 케이스를 더 많이 고민하는 친구들은 중도 하차 후 원래 하던 일로 돌아가거나 다른 일을 찾아볼 확률이 높고, 2의 케이스를 더 많이 고민하는 친구들은 또 다른 교육기관을 찾아 같은 시간을 반복하거나 인터넷 강의 콜렉터가 된다.
처음 목표했던 바와 가장 멀어지는 시기가 이 때인 것 같다. 면접을 보다보면 실제로 부족한게 너무 많고, 뭔가를 더 준비해서 취업 시장에 덤벼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는 20년도 당시 취준까지 1달 반쯤 걸렸는데 1달 쯤 지나던 시점에서 주변 동기들이 우르르 취업하고 서류와 면접에서 우르르 탈락하면서 멘탈에 살짝 금이 가는 걸 느꼈다. 만약 내가 1년 동안 취업 준비를 해야 했다면 지금과 같은 글을 못 쓰고 있었을 수도 있다. 부트캠프 수료 후 -> 취업 스터디 -> 단기간 많은 서류지원과 면접 코스는 그간 공식처럼 여겨져 왔으나 요즘 같은 시장에 막연히 저 전략을 썼다간 더 이상 지원할 회사가 남아있지 않게 된다. 정확한 수치는 모르겠지만 대충 100-200개 이력서 넣고 나면 지원할 곳이 없어진다.
죄송합니다, 신입이 신입 티를 벗어야 취업이 되는 세상이에요
주의: 여기서부터는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법칙도 아니며, 제가 현재 회사의 채용 정책을 대변하는 취지로 쓰는 글도 아닙니다.
어차피 그렇게 탈락할거라면 좀 더 장기 목표를 잡고 부트캠프를 또 들어가는게 뭐가 문제인가? 이 주제에 대해서는 많은 필자들이 논했던 바 교육 수준이 어쩌구 같은 경험을 반복 어쩌구 같은 소리를 똑같이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패스하겠다. 개발 회사 근무 경험이 없는 신입이 내게 자신이 입사 후 해야 할 가장 첫 번째 과업을 꼽아달라고 부탁한다면 교육생 마인드를 벗는 걸 목표로 잡으라고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제대로 이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을 경우 빠르면 2년, 일반적으로 3년, 느리거나 환경에 따라 4년 정도 걸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빠르게 개발자로 취업하고 싶다면 교육생 마인드셋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환경과 전략을 택하는 것이 좋다.
혹자는 생신입에게 저렇게 하라고 말하는걸 무리한 요구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같은 노력을 하더라도 효과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과거에는 취업 문턱이 낮아 어떻게든 회사에서 구르다보면 반자동적으로 월급 개발자로서의 마인드셋이 갖춰질 수 있었다면, 요즘엔 신입 과잉 공급으로 인하여 취업 허들이 올라갔고 애초에 그 허들을 넘지 못하면 경력을 쌓을 수도 없게 된 상황이 되었다. 강조하건대 절대 이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시장은 즉시 전력으로 쓸 수 있는 경력 개발자들을 선호하는 상황이고 매크로 상황이 변하지 않는 이상 이 구조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개인이 할 수 있는 노력은 1) 이 시장을 떠나든가 2) 경력에 준하는 역량을 갖추는 일이다. 문제는 대부분 2에 대해서 착각한다는 점에 있다.
경력 개발자들은 대체로 신입 개발자들이 알고 있지 못한 지식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건 표면적인 현상일 뿐 핵심이 아니다. 핵심은 경험으로부터 얻은 문제 해결 능력이다. 많은 신입 개발자들은 본인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기 보다 관련 기술 스택의 인프런 강의를 먼저 찾아보곤 한다. 강의를 보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강의를 보는 행위가 ‘수동적’인 행위라는 사실은 인지한 상태에서 선택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강의는 1) 당장 써야 하는데 하나하나 삽질할 시간이 없을 때 2x 로 빠르게 훑는 목적 2) 현재의 내게 부족한 코딩 근육을 보완해줄 목적의 보충제 정도로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는 실제 헬스장에 가서 중량을 쳐야 한다. 백날 운동법 유튜브만 본다고 근육이 커지진 않는다.
Be an Engineer, Be a Problem Solver
현실에 존재하는 문제를 정의하고 적절한 도구를 선택하여 빠르게 해결한다. 도구의 원리를 추론하고 파악하여 문제 정의와 해결의 과정을 더욱 효율적인 방식으로 최적화 해나간다. 현재의 나로서는 이것이 엔지니어로서의 자의식이라고 생각하고, 이 측면에서 수동적인 학습 방식으로는 배양될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처음부터 엔지니어로 태어나지는 않는다. 나 또한 그랬고. 최초에는 성향이었겠지만, 환경과 노력 여하에 따라 충분히 학습 가능한 행동 양식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부트캠프를 한번 수료했다면, 또 한번 목돈 쓰며 같은 경험할게 아니라 어떻게든 현업 개발자가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문제를 해결하는지를 관찰하고 이를 모방하는게 가장 효율적인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양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질적으로 다른 방법론으로 돌파해야 한다고 믿는다. 머리가 깨어나는 듯 충격을 받았던 모먼트들은 거의 대부분 혼자 문제를 골몰하던 시간 혹은 실력이 좋은 다른 개발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받았던 순간들이었다. 하지만 내가 행동하던 방식을 일부 버리고 극복해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심적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추천하고 싶은 실천 방안이 있다면 1) 내가 필요한 도구 만들기 2) 강의, 강사를 찾기 보다는 커피챗 등을 통해 좋은 역량을 가진 실무자들과의 접점 늘리기이다. 일단 내가 필요한 도구를 만들다 보면 스스로 기획자, 디자이너, 기술자 포지션을 모두 소화해야하며 최종 QA 까지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부족한 지점을 보완하며 기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고, 이 모든 건 자연스레 포트폴리오가 된다. 그리고 좋은 역량을 가진 실무자와의 대화는 토끼굴에 빠져 들어가기 쉬운 취준생 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다. 내가 상상만으로 결정한 보완점은 실제로는 보완점이 아닐 수도 있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보완점이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대화를 통해 내가 무엇을 더 배워야 하는지를 효과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실제로 나도 21년도 쯤 한번 길이 막혔을 때 지인과의 커피챗을 통해 기술적으로 노력해볼 만한 주제를 얻어갈 수 있었고, 그 다음 해에 다시 만났을 때는 내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벽을 넘기 위해 필요한 것이 ‘그래도 개발 사랑하시죠?‘의 마인드이다. 개발에 미쳐버린 광인이 아니면 안된다는게 아니라, 문제 하나에 골몰하고 고통 받다가도 해결했을 때의 짜릿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인지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마인드셋을 유지하려면 최대한 다른 사람들과 서로 어깨걸고 버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데, 취준 기간이 길어지면 취업 먼저된 동료가 스터디에서 탈출하기도 하고 자존감도 떨어지고 해서 결국 혼자하게 되는데 이건 정말 좋지 않은 패턴이라고 생각한다.
취지가 어땠든 사실 꽤나 꼰대같은 어조의 글인데 나도 내가 이렇게 꼰대 같은 이야기를 하게 될줄 몰랐다. 하지만 시절이 엄혹하고 결국 입사 한다고 하더라도 그간 개인적으로 쌓아온 DB 상 저런 자질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좋은 평가를 받으며 즐겁게 개발자 일을 하는 케이스를 보지 못하기도 했다. 시작은 작은 차이지만 이런 평가와 태도의 누적이 커리어 상 큰 스노우볼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겁줘도 할 사람은 하고, 안할 사람은 안한다
사실 압도적으로 보상이 좋은 사짜에 속하는 직업을 제외하면 개발자는 꽤나 좋은 직업 중 하나라고 본다.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개발을 시작하면서 인생 전체가 극적으로 바뀐 케이스라 주변에도 적극 권장하고 다녔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기술직군 대비 진입 장벽이 낮고, 취업문이 좁아진 반면, 막연히 공무원 학원처럼 시험 잘쳐서 시작할 수 있는 직업으로 여기는게 사람이 많아진건 아쉽게 생각했다. 도전은 자유지만 그 도전에 들어간 시간과 노력은 돌아오지 않으니… 공익 목적으로 긴 글을 썼다고 생각해주면 고맙겠다. 스스로도 생각 정리가 필요하기도 했고.
나도 내년이면 5년차가 되는 입장이지만 아직도 너무 알아야 할 것이 많아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 직업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매력적이고, 가급적 오래오래 이 일을 계속 하고 싶다. 모두의 건투를 빈다… 내가 언급한 방식이 아니어도 좋으니 어떻게든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읍시다… 그리고 행복하시길.
P.S) 기왕 조언 받을거라면 다양한 케이스에 대한 경험 + 최신 업데이트가 된 사람에게 조언을 받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