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자기 이해를 기반으로 생존을 엔지니어링 하기

2024-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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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건 중요합니다. 당연합니다. 하지만 왜 중요할까요? 참 재밌는 사실은… 인생은 꽤나 자주 우리를 속이고, 종종 자기 자신에게 조차 속곤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가짜 문제’에 속아 많은 시간과 기회를 내다버리곤 합니다. 잘 알지 못하는 주제에 대해서는 속아 넘어가기 쉽지요.

사실은 책 싫어하는 사람이 ‘나는 책 좋아해’ 라고 착각하고 글쓰기를 업으로 삼으려고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 목표를 이룰 수도 있고, 비록 착각으로 시작했지만 과정 속에서 정말 좋아하게 될 수도 있죠. 다만 처음부터 쉽게 좋아할 수 있고 노력하기 좋은 분야 혹은 노력의 방식을 찾는 것과는 질적인 차이가 있겠습니다.

제가 책 얘기를 했지만 ‘책을 좋아한다’는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책’ 조차 중요치 않습니다. 이건 드러난 ‘증상’에 가깝습니다. 그가 책을 좋아하도록 느끼게 만든 진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어린 시절의 작은 에피소드와 연관되어 있을 수도 있고 유전적인 영향일 수도 있습니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내밀한 이유들은 결국 ‘욕망’이라는 키워드로 향합니다. 여기부터는 스스로 깊게 생각해보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는, 오직 자신만이 밝혀낼 수 있는 영역이지겠요.

‘너 자신을 알아라’ 같은 고리타분한 얘기를 하고 싶은걸까요? 글쎄요… 일정 부분 그럴 수도, 일정 부분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인정 욕구의 화신

저는 20대 내내 글을 잘 쓰려 노력 해왔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성취감도 느끼지 못한 채 29살 즈음 기자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접게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 지경이 될 때까지 언론고시라고 부를만한 시험에 도전을 하거나 심지어 이력서 조차 써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곤 바로 개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백 곳이 넘는 회사에 지원했고, 5년 째 일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도 공부해야 하는 주제들은 항상 끝없이 줄을 서있어 막막할 때가 많지만 과정 속에서 많은 성취들을 맛보고 있습니다. 인생의 아이러니죠.

단순히 생각하기로는 기사 쓰기 보다 프로그래밍이 ‘인정 욕구’를 채우기에 유리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차이점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강의로 커리어를 시작하고 그 분야가 개발이었다는 사실은 지금 돌아보았을 때 천운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글을 쓰고 있고, 강사 일을 하면서, 개발자로 일하는 모든 순간에서 조차 글쓰기를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에게 빚을 지고 있음을 부정하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는 사실을 몰랐던 건 중요한 지점입니다. 원하지 않는 걸 즐기고 반복하기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행동심리학에는 ‘강화(Reinforcement)’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특별한 건 아니고 어떤 행동에 보상이 주어질 때 해당 행동을 좋은 것으로 인식하고 반복하게 되는 현상을 이르는 말입니다.

개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무척 이기적이다. 눈썰매를 끌라 하고, 마약 탐지를 시키고, 집 지키는 것도 모자라 온갖 쓸데없는 개인기까지 보여달라고 조른다. 캘리포니아 해변에 사는 주인을 만나면 서핑을 강요당할지도 모른다. 이건 뭐, 끝이 없다.

하지만 이 철없는 개 주인의 입장은 이렇다. 공놀이도 하루 이틀이고, 뭔가 기막힌 재주를 가르치고 싶다. 미개척 분야인 서핑을 택한다. 문제는, 어떻게?

서핑은 커녕 바다에 들어가는 것조차 꺼리는 개를 어떻게 서퍼로 만들 수 있을까? 다행히 주인은 자기 개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다. 특이하게도 그것은 새우깡이다. 갑자기 희망이 생긴다. - 서은국, <행복의 기원> 65~67p

자, 이제부터는 조련이 시작된다. 개가 물가로 오면 새우깡을 하나 준다. 그리고 물에 발을 담그면, 서핑보드에 한 발짝 올라오면, 또 새우깡을 준다. 한 단계씩 미션을 완수할 때마다 상을 주는 것이다. 결국 개는 서핑을 하게 된다. 서핑을 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지만, 자기도 모르게 서핑을 하고 있다. 개는 단지 새우깡이 먹고 싶었을 뿐이다. - 서은국, <행복의 기원> 68p

글쓰기의 막막함과 비교하면 개발을 배우는 일은 제게 너무도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개발 분야에서는 오늘 A라는 개념을 배우기 위해 투자한 시간과 비례하여 할 줄 아는 일이 비교적 정직하게 늘어나는 편입니다. 올바르게 구현했다면 화면에 잘 나타날 것이고, 틀렸다면 곧바로 에러가 나는 등 다른 일들에 비해 피드백 루프가 빠르고 정확합니다.

미숙한 구현이라도 괜찮습니다. 어쨌든 동작하니까(“It works!“)요. 동작하는 코드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습니다. 물론 함께 공부를 시작한 동기들과 호들갑 떨며 기쁨을 나누는 일상 또한 중요한 동기부여 중 하나였고요. 작게, 자주 성취감을 느끼기 좋은 구조입니다. 사육사가 보상으로 간식을 잘게 잘라서 입에 넣어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초보 수준을 갓 벗어나자 마자 일을 시작했다면 저같이 예민하고 유약한 사람이 이 즐거움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종종 해봅니다. 우연하게도 강사 일을 시작했는데요. 누군가는 길을 돌아갔다 여길 수도 있겠지만 이 일을 하며 많은 걸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종택님 감사합니다” 라는 말 한 마디를 듣는게 좋아서 자꾸 더 잘 알기 위해 반복적으로 노력하게 되었던 것. 길은 여기서 결정적으로 갈렸습니다.

대학생 때 발표와는 담을 쌓았던 제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잘 떨지 않게 된 점이나, 새로운 업계에 진입한 사람이 가질 수 없는 네트워크를 갖게 된 점도 좋았고, 일로서 성과를 낸다는 건 무슨 감각인지를 알게 되었으며,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주도적으로 ‘업무’에 뛰어들었다는 점은 중요한 경험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일’과 ‘즐거움’을 연결지을 수 있었던 것에 가장 방점을 찍어두어야 하겠습니다. 일이라는 건 단순히 나의 시간과 돈을 교환하는 것이 아니며 그 이상의 사건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일을 대하는 지금의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누군가를 가르치다보니 개발을 잘 하게 되었다’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핵심은 “어떻게 반복하도록 만들 것인가”의 문제가 아닐까요? 내가 잘하고 싶은 일을 갈고 닦기 위한 요령이 있으신가요?

의지를 노력한다는 게 말이 되니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탁월함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탐구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탁월함은 타고난 재능이 아닌 반복된 행위와 습관에서 비롯됩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대부분은 ‘타고난 천재’라기보다는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개발자로서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과정에서 단순히 정보를 읽고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실제로 코드를 작성하고, 실패를 경험하고, 그것에서 배우는 반복적인 활동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처음엔 서툴더라도 점차적으로 실력이 향상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노력들이 좋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지만 지속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성장은 계단식이라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고통의 시간을 반드시 통과하게 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인내만으로 지속할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기 힘듭니다. 의지만큼 깨어지기 쉬운게 또 있을까요?

결국 의지보다는 재미라고 생각합니다. 재미는 순풍입니다.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자연스레 추구하게 될 뿐입니다. 재능이든 진짜 뇌의 보상 회로가 우연하게도 욕망하는 길이었든 재미를 느끼는 일은 반복하기 쉽습니다.

개발이 재미 있는 사람만 여기에 남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제가 애초에 개발을 재미있게 느끼는 편이기는 했지만, 처음부터 컴퓨터공학과에 갔거나 제 능력을 과도하게 넘어서는 환경 속에서 지냈다면 이야기는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내 자신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배려라면 자기 이해를 기반으로 즐거움을 느끼기 좋은 환경으로 나 자신을 이끌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노력은 중요합니다. 노력이 중요한 만큼, 그것이 쉬울 수 있도록 고민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엄청난 정신력을 발휘하여 초인적인 자기 통제 속에 기울여진 노력이든, 놀이의 즐거움 속에서 기울여진 노력이든 그 출처가 상관이 있을까요. 노력을 해킹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피할 필요가 없습니다.

남들이 정해준 ‘진짜 개발자의 공부 방법’ 같은 것도 내게 맞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저는 인정욕구에 목말라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정말 변화를 만드는 효능감을 느낄 수 있길 바랐습니다. 그 기쁨을 쫓다보니 보다 자연스레 노력하고 작은 성과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행복의 조건은 내 안에

어쩌면 이건 저에게만 해당하는 특수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질문을 이어가 보고 싶습니다. 우리는 결국 노력을 해킹할 수 있을까요? 자기 이해를 기반으로 생존을 엔지니어링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어감이 딱딱하니 조금 풀어서 다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나는 나의 삶을 어떻게 즐거움으로 이끌어줄 수 있을까요? 시절이 엄혹해질 수록 생존은 중요한 가치처럼 여겨지게 되지만, 생존 그 자체에만 집착해서는 오히려 멀어지는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즐겁게 해나갈 수 있을지, 나는 어떤 이유들로 행복함을 느끼는 사람인지, 마음이 급해지고 즐거움을 잃기 쉬운 때일 수록 그 이유들을 곱씹어보며 행복에 한 발짝 더 가까워 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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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motmi

'내가 원하는 건 문학이 아닌 기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