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소용돌이
나의 2022는 첫 퇴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2020년 6월 부터 약 1년 10개월 여를 다닌 직장(위코드)에서의 업무를 마무리했던게 1월 말이었다. 프론트엔드 멘토로 입사한 뒤, 팀원이 2~3배 정도 늘었기에 막바지엔 총원 6명의 작은 기능조직 팀장 역할도 경험해볼 수 있었다. 이곳은 내가 처음 개발을 배운 부트캠프이기도 했는데, 아무 능력도 경험도 없던 내가 첫 직장으로서 개발만 빼고 많은 걸 배우고, 멘토와 멘티로 정말 다양한 분들을 만나면서 여러 성장의 기회를 받았던 감사한 곳이었다. 퇴사할 때 쯤에는 애정만큼 증오도 컸지만, 후자의 감정은 동료들을 향한 것이 아니었기에 마치 DM처럼 편지를 받아볼 수 있도록 슬랙 모양의 웹 페이지를 만들어서 남겨놓고 오기도 했다. (+ 마지막 출근 날이라는 사실을 내가 마지막으로 담당했던 28기 수강생 분들께 깜짝 발표했는데 반응이 아주 재밌었다 ^^ 마지막 기수였던 만큼 많은 시간과 애정을 쏟았기에 기억이 많이 남는 듯…)
사실 내게 가장 많이 결여된 능력치라면 눈치와 일머리, 업무 조율하고 설명하기 등등의 소프트 스킬이었다. 나는 조별과제를 하더라도 혼자 머리 싸매고 다 만들어오고 하는 방식이 익숙했던 사람이었다. 사람들과 업무적으로 많이 부딪히고 일하는 방식도 여기저기서 많이 참고하고 자극 받으면서 첫 직장으로서 좋은 경험들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이때만큼 다시 즐겁게 일할 수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커리어에 대한 불안감과 경영진의 크리티컬한 실책들을 수차례 경험하며 그 다음 회사로 옮기게 됐다. 이곳에서의 이야기는 언젠가 글 하나로 따로 풀 기회가 오지 않을까 싶다…
새로운 회사로의 이직, 그리고 UTS와의 만남
2월 중순 부터는 리멤버라는 비즈니스 플랫폼 앱을 만드는 드라마앤컴퍼니의 플랫폼 크루 소속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이직을 했다(내가 처음 가르쳤던 수강생 분이었던 정민님이 일하고 계신 회사라서 추천채용 제도를 활용할 수 있었는데, 이 제도로 실제 입사한 건 최초라고 한다. 그리고 나도 이 제도를 활용해 희경님을 추천 입사로 모실 수 있었다). 종종 앱 만드는 회사에 프론트엔드가 필요한가요? 라는 질문을 받기도 하고 스스로 갖기도 했지만, 이 회사에서 실질적으로 돈을 만들어내는 건 웹으로 제공되는 B2B 제품이라는 사실이 제법 놀라웠다. 또 하나 놀라웠던 사실은 입사 당시 개발팀은 전원 풀 재택이 가능했다(역삼 포스코타워로 사무실을 옮긴 지금은 이틀 출근, 3일 재택으로 정책이 바뀌었다). 이전 직장은 메인 BM이 교육업이기도 했고, 재택을 하면 무조건 능률이 떨어진다는 관점이었어서 재택 따위는 언감생심이었는데, 전사 풀재택을 하면서도 일이 굴러가고 있다는 게 너무나도 생소하고 신기했다. 무엇보다도 조직 규모가 30명 -> 160명으로 확 커져서 그런지 좀 더 회사다운 느낌이 들었다.
적응할 새도 없이 거의 바로 제품 하나를 신규 개발하는 태스크를 맡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백오피스 단에서 핵심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유저 타게팅 시스템(UTS)으로, 대략 UI에서 필터를 추가하여 Elastic Search Query를 조합해주는 도구라고 생각하면 된다. 구현에 필요한 여러가지 로직들이 난이도가 있었던 건이기도 하고, 사실 실제 프론트엔드 개발을 해보는게 처음이었어서 꽤 힘들었던게 사실이다. 이 때 10-7 개발하고, 1시간 밥 먹은 뒤, 2시간 정도 잠시 눈 붙였다가, 다시 일어나서 새벽 3시까지 개발 후, 다시 10-7 개발하는 게 일상이었다. 하지만 너무너무 재밌었고, 행복한 기억이었다. 이전 회사에서 프론트엔드 멘토였던 나에게 프론트엔드 개발 태스크를 주지 않았고, 지금은 좀 달라진거 같지만 멘토들이 개발자로서 전문성을 쌓기에는 너무도 척박한 환경이었던 탓이라고만 해둔다.
그래도 오히려 어려운 태스크를 처음부터 맡았기에 다른 잡생각 없이 조직에 소프트랜딩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애매하고 자잘한 태스크들만 치우다보면 조직 내에서 내 능력을 증명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며 나 또한 효능감을 느끼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 오자마자 비교적 어려운 일을 해내면서 수습 기간 동안 괜찮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대략 실질적인 개발은 3월 부터 시작했던 것 같은데, 5월 말쯤 완성하여 6월 부터는 프로덕션에 런칭하고 지금까지 꾸준히 유지보수를 해오고 있다. 이제 이 시스템을 기반으로 부가기능들도 이거저거 많이 생겨서 활용도가 꽤나 생겨서 뿌듯한 마음으로 업무를 이어오고 있다. 근데 이 바쁜 시기에 오히려 공부하고 있는 내용 주간 지식 공유 시간에 발표도 많이 하고 그랬음(모나드, UTS 설명회, HTTP Cache, SOLID, ISR)… 아 그리고 어쩌다보니 매달 진행하는 테크톡 준비 위원회에 소속하게 돼서 그것도 하는 중… ;(
조직 변경과 함께 시작한 하반기
그렇게 정신 없는 상반기를 마무리하고 하반기로 넘어가면서 웹 파트 테크리드이자 리멤버 웹버지였던 명호님의 퇴사를 겪고(앞서 UTS를 기획했던 PO 분도 퇴사하셨어서 나 면접 봐주신 3분 중에 2분이 퇴사하심 ㅎ), 몇 가지 자잘한 태스크들(리멤버 웹 사이트 네비게이션 바 통합, UI 라이브러리 타입스크립트 마이그레이션 등등)을 하다가 기존 소속에 더해 사업가속화 크루 라는 신설 조직을 겸업하게 되었다. 우리 회사는 B2B 특성 상 운영 업무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 편인데, 이게 사업이나 제품 변경도 잦고 하다보니 몸빵으로 때우는 부분이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사업가속화 크루는 이런 상황에서 발생하는 비효율을 분석, 적절한 솔루션을 도출해 업무에 들어가는 리소스를 줄이는 미션을 담당하게 됐다고 보면 된다. 근데 쉽게 설명하면 어드민 크루… 여기 소속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태스크는 채용공고 연관된 푸시 발송 관련 기능을 자동화 하는 기능을 추가한 태스크였다. 이전에 UTS 작업하면서 알게 된 ES Query에 대한 지식으로 잘 만들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기존에 운영 업무에 소요되던 시간이 대폭 줄고 업무가 정확해져서 감사 인사를 받았던게 너무 행복한 경험이었다. 지금은 외부에 CRM 툴을 구매한게 있는데 그거 연동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 4분기 들어 몸이 지치기도 했고,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업무 집중력을 잃으면서 3분기 까지의 성과보다 뭔가 가시적인게 나오지 않는 느낌이다보니 혼자 마음이 조급해지고 있다… 요즘의 고민…
11월에는 기존 사내에 yarn classic으로 되어 있던 프로젝트들을 berry로 옮기면서 고생 좀 했지만 도커나 AWS 등등 인프라 일부에 대한 공부를 좀 했다. 근데 이거 설명 자료 다 만들어서 팀 내 공유까지 다 했는데 기술블로그 말투로 고치는게 귀찮아서 올해 내에 퍼블리시를 못했다… 진짜 이거 너무 아쉬운 부분 ㅠ 그리고 AWS 얘기 나온 김에 사내에서 진행하는 AWS VPC 스터디에 참석하고 있다. 우리 회사는 별도의 DevOps가 없어서 개발자가 인프라를 같이 알아야 한다. 근데 나는 인프라 지식이 너무너무 없어서 굉장히 바보가 될 때가 많은데, 이게 개발자로서의 자신감이나 업무 퍼포먼스에도 영향을 주는 게 느껴졌고 사내 스터디라는 좋은 기회를 잡아보기로 했다. 난이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어서 의지가 흔들흔들거리지만 일단 끝까지 가보려고 한다.
분산 되는 에너지, ‘한 방’을 만들지 못한 아쉬움
스터디 얘기 나온 김에 스터디 얘기로 좀 더 이어가보자면… 지난 해 12월 부터 시작했던 <리팩터링> 읽기 모임을 4월에 마무리하고, 여름 쯤에는 오픈소스 탐험단을 목표로 했지만 <클린 아키텍처> 읽기 모임으로 끝나버린 스터디…를 거쳐 지금은 <쏙쏙 들어오는 함수형 코딩> 읽기 모임을 하고 있다. 스터디 외에도 <프로그래머의 뇌>나 <함수형 자바스크립트> 같은 책들을 틈틈이 읽었는데 올해 하반기에 가까워질 수록 전반적인 텐션이 떨어지면서 큰 능률이 나진 않았다. 하지만 그냥 텐션이 떨어졌다고 하면 좀 부당한 것이 이 시기에 너무 많은 일들을 동시에 진행했다. 이 때 미래의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캐파는 생각지도 않고 비어있는 자리에 가리지 않고 새로운 기회들을 무작정 때려 넣어버렸던 후폭풍으로 전반적인 삶의 질이 떨어져버렸다. 다시는 이런 실수하지 않도록 하자.
ㅋㅋㅋㅋ 하나씩 생각하다보니 자꾸 뭐가 튀어나오는게 너무 웃긴데, 당근마켓 통해서 두 가지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하나는 동네 사람들과 캐치볼하는 모임이고, 또 하나는 내가 만든 카페 모각코 모임이다. 둘다 하반기에 내가 너무 다양한 스케줄로 바쁘고 지쳐서 소홀해졌긴 한데 그래도 아직 잘 소속되어 있다. 그리고 사내 독서모임도 있는데 대략 1달 주기로 새로운 책을 읽고, 지금까지 5권 정도 읽은 상황이다. 올해 블로그에 적은 글들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모임이다. 물론 다양한 활동으로 인해 즐거웠지만 지금 이렇게 적으면서 생각해보니 나는 나에게 너무 가혹한 한 해를 보낸 것만 같다. 내년에는 정말 뭔가를 채우더라도 어딘가에 묶이지 않고 시간을 자유롭게 재배치할 수 있는 형태를 고안해야만 하겠다.
내년엔 더 잘할 수 있어
그런 바쁨 속에서도 소소한 행복을 챙기려 노력했다. 지난 해 보다는 훨씬 내 삶이 생겼고, 인간답게 살았다. 어떻게 보면 그간 너무 독성에 가까운 업무 습관을 가지고 살았던 것 같다. 이제 삶을 매니징 하지 않으면 안되는 단계라는 걸 실감한다. 요즘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하루와 일주일과 한달이, 너무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가고 항상 나는 일정 속에서 휩쓸려다니며 모든 기력을 빼앗기고 있는 상황이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리고 이번 주 코로나 확진으로 인해 집에 갇혀 있는 상황이다. 찾아보니 근 5년 간 4번 정도 연말 연초에 항상 몸살을 앓았는데, 이 때마다 손에 쥐고 있던 모든 걸 내려놓고 인생을 돌아보게 되는 듯 하다. 나는 올해 정말 거의 모든 것들을 잘 헤쳐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많은 것들을 바꾸고 이뤄냈다는 기쁨에 취해 즐거움을 너무 과하게 표현했던 것 같다. 즐거움까지는 좋았으나 그 기분에 취해 교만한 말 한마디 가볍게 툭툭 내던졌던 것 같다. 그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불편했을까, 생각해보면 마음이 매우 좋지 않아진다. 특히 하루를 착실히 잘 쌓으며 보내시는 분들을 떠올리면 그런 부끄러움은 배가 된다. 이런 찌글찌글함을 그간 많이 이겨냈다고 생각했는데, 나쁜 버릇들이 어느새 다시 튀어나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최근에 인지하여 잠시 좌절하고 채널 조정 중이다. 올해 나의 말과 행동을 불편하거나 고깝게 느끼셨을 분들께 다시 한번 사과의 말씀 드린다.
어쨌거나 2022년은 내게 전반적으로 성공적이었다. 특히 개발자로서의 커리어를 다시 한번 확고하게 굳힐 수 있었던 아주 중요한 해였다. 하지만 경험, 지식 부족 등으로 인해 한 명의 개발자로서 정말 충분한 퍼포먼스를 냈는가에 대해 자문해보자면 꼭 그렇지 만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올해 1년 차를 이제 막 보낸 프론트엔드 개발자’라는 말을 외우고 지냈다. 사실이 그러하니까… 2023년에는 새로운 성장의 포인트들을 전략적으로 잘 잡아서 회사 내에서 기술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개인적으로도 많이 성장하는 한 해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수고했고, 앞으로도 화이팅!